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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 1701년 11월 27일 ~ 1744년 4월 25일)는 스웨덴의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섭씨 온도(Celsius scale)를 제안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스웨덴에서 과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으며, 특히 온도 측정 및 기상학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학문적 배경과 초기 연구
안데르스 셀시우스는 스웨덴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학문적인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는 1721년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한 후,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천문학자로서 그는 지구의 모양과 크기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당시 프랑스와 함께 스웨덴에서 극지방과 적도에서의 중력 측정 실험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지구가 완벽한 구형이 아니라 약간 납작한 모양임을 밝혀냈습니다. 안데르스 셀시우스의 주요 연혁은 다음과 같습니다:
1701년 11월 27일: 스웨덴 웁살라에서 출생
1721년: 웁살라 대학교에서 수학과 천문학 공부 완료
1730년: 웁살라 대학교 천문학 교수로 임명
1732-1736년: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으로 연구 여행
1736-1737년: 프랑스 북극권 탐사에 참여하여 지구의 중력과 자전 효과 연구
1739년: 웁살라에 천문대 설립
1742년: 섭씨 온도계 제안, 물의 끓는점과 어는점을 기준으로 함
1743년: 스웨덴의 지표 융기 속도 측정
1744년 4월 25일: 42세의 나이로 폐병으로 사망
섭씨 온도의 개발
셀시우스는 1742년에 섭씨 온도계를 고안했습니다. 초기 섭씨 온도는 현재와 반대로 설정되었는데, 물의 끓는점을 0°C, 어는점을 100°C로 설정했습니다. 이후 셀시우스가 사망한 후,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섭씨 온도가 현재의 형태로 수정되어 오늘날의 방식, 즉 물의 어는점을 0°C, 끓는점을 100°C로 표기하는 체계가 되었습니다. 이 방식은 물의 특성을 기준으로 온도를 정의하기 때문에 매우 직관적이고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주요 업적
♣ 북극권 탐험과 뉴턴의 이론: 뉴턴의 중력 이론이 논쟁의 중심이었던 시기에 셀시우스는 1736년부터 1737년까지 프랑스 탐험대와 함께 북극권 탐사에 참여했습니다. 탐사는 지구가 자전으로 인해 극지방에서 편평해졌는지 측정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결국 뉴턴의 이론에 유리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 웁살라 천문대와 경도 측정: 셀시우스는 북극권 탐험 후 웁살라에 천문대를 설립했습니다. 천문대를 통해 그는 지구 표면의 위도와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을 발전시켰으며, 스웨덴 최초의 본초 자오선을 설정했습니다.
♣ 해수면 변화와 지표 융기: 셀시우스는 당시 '물 침하 현상'으로 알려진 지표 융기 현상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1743년 그는 처음으로 그 속도를 측정했으며, 이를 통해 스웨덴의 넓은 지역이 과거에는 해수면보다 낮았음을 밝혔습니다.
♣ 섭씨 온도계 개발: 셀시우스는 1742년에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을 기준으로 한 섭씨 온도계를 제안했습니다. 이 온도계는 오늘날에도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표준 온도 단위가 되었으며, 그는 온도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웁살라에서의 기후 변화 연구에 기여했습니다.
♣ 자기장과 북극광 연구: 셀시우스는 웁살라에서 자기장과 북극광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했습니다. 그는 자침의 진동이 북극광 현상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이는 태양이 북극광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유산과 영향
안데르스 셀시우스는 비교적 짧은 생애 동안 과학계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섭씨 온도(°C)는 세계적으로 표준 온도 단위로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과학, 기상학, 일상 생활에서 필수적인 단위로 자리잡았습니다. 그의 업적은 기후 변화 연구, 물리학 실험, 산업 온도 제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셀시우스는 온도 측정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천문학 및 지구 물리학 분야에서도 기여한 다재다능한 과학자로 기억됩니다.